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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손절기

찬슬- 2022. 6. 17. 22:12

생애 첫 주식을 손절한 얘기부터 시작한다.

나는 대체로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극한의 가성비를 추구해서 소비를 하고 그렇게 나름대로 누릴 것은 누리고, 모을 것은 모으면서(그렇게 생각하면서) 현금 자산을 늘려왔다. 물론 이건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는 이점도 있었고, 여자친구도 큰 돈 쓰는 성향이 아니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런데 어쩌다 한번씩 그 가성비 추구 성향에서 벗어난 짓을 할 때가 있다. 나는 타이밍을 그다지 재지는 못하는 편이고, 앞에서 봤듯이 내가 자산을 불리는 방식은 꾸준히, 시간을 들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돈을 버는 노력에서도 가성비를 추구하고 싶었던 것인지, 내 나름대로는 큰 돈을 투자해서 돈을 잃는 경우들이 있다.

한번은 사회생활 1년차에 했던 코인이 그랬고, 한번은 지금 쓰는 주식이 그렇다. 오늘은 주식 얘기를 해 봐야겠다.


주식이 고도화된 자본 시장의 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주식이라곤 개별주 투자밖에 모르고, 개별주 투자는 곧 삼성전자를 사는 것이고, 내 인식 속 삼성전자 주가는 액면분할 전 가격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주식으로 돈 버는 건 저 먼 나라 얘기에 불과했다. 게다가 개잡주, 작전주가 넘쳐나는 박스피, 시작하자마자 고점 찍고 고인이 돼 버린 코스닥 얘기는 내가 주식에 관심은 갖지만, 접근하기엔 꺼려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다가 상장지수펀드, 그러니까 ETF라는 걸 알게 됐다. 시장에 상장된 상품을 묶어서 시장을 추종하게 만드는 펀드. 마침 주식은 분산투자를 해야 리스크 관리가 된다는 점도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그러면 ETF 투자를 하면 좋겠구나 하는 정도쯤 생각은 들었지만, 호기심을 갖고 찾아본 국내 주식 ETF의 수익률은 내 기억으로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ETF라고 돈 쉽게 벌게 해 주는 건 아니구나(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이 생각부터 글러 먹은 거였다, 세상에 돈 쉽게 벌게 해 주는 건 없다) 생각이 들 무렵,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동학개미운동이라는 게 벌어졌다.

사실 동학개미운동에 담긴 원리를 나는 따랐어야 했다. 여러 요인으로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서, 경기 사이클에 올라탄 뒤, 내재된 평가 수준에 올라오면 이득을 본다는 것. 물론 지금 보면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풀어놓은 현금 때문에 저평가된 것으로 보였던 것일 수 있겠지만, 우리의 시장 안에서 주가는 저평가되었고, 사람들은 사이클에 올라탔다.

여기저기서 주식 사라, 주식 사면 돈 벌고 애국하고, 기업이 산다는 얘기들이 난무했다. 주식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나타났다. 그 와중에 전 세계 시장경제의 핵심인 미국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너도 나도 미국 주식시장의 우수함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주식을 해 볼까 하고 접근할 마음을 품었던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생각해 보자. 슨피 기준 연 평균 10%, 나스닥 기준으로는 연 평균 15% 정도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 외쳤던 존 보글 센세가 나타났던 미국 주식시장이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낙원과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속성으로 주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알아보기만 했던 것은 뒤에 큰 화근을 불러온다.

내가 주식에 대해 알아본 것들은 지금 생각해 봐도 아주 정석적인 것들이다. 저평가되었을 때 분할매수해서 오래 보유해라. 잊고 있으면 더 좋다. 달러 패권이 유지되고, 혁신적인 기업들이 계속 나타나는 한, 역사적으로, 장기적으로 미국 시장은 무적에 가깝다. 사실 이 점은 꽤 아픈 손절을 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도 매우 많이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건 장투 방법론인데 나는 어쩌면 마음 속에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작년 10월쯤 QQQ를 매수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봤을 때 극한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내 입장에서 가장 맞는 건 변동성 대비 높은 수익률을 뽑아주는 것일 거고, 그런 점에서 보면 SPYG 정도가 가장 맞는 상품일 것일 텐데, 나는 변동성 같은 건 생각지 않고 QQQ를 매수했다. 여기엔 투자 같은 건 관심 없던 여자친구가 심심풀이로 SPY를 산 걸 봤던 것도 있다. 여자친구 탓을 하는 게 아니라, 당시 슬슬 결혼 얘기가 나오던 나로선 돈을 더 벌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게 QQQ 매수로 손을 가게 했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처음엔 QQQ를 매달 한 주씩 월급날에 매수할 생각이었다. 당시 나스닥은 역사상 고점을 찍었고, 어떤 수를 써서든 더 높은 곳을 향해 갈 것이라는 개미들의 장밋빛 전망이 팽배했을 시기였다.(사실 이게 고점 신호라는 걸 지금에야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그런 중에 나스닥으로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니, 레버리지 무한매수법이다.

무한매수법이란 건 3배 레버리지 ETF를 40분할 매수해서 변동성을 이용해 일정 매도 타점에서 먹고 나오는 단타 방법이다. 위험해 보이는 레버리지 ETF를 이용해 꽤 안정적으로 먹고 나오는 방법이란 내 눈에 굉장히 훌륭한 방법으로 보였고, 나는 소액으로 한번 따라해 보기로 했다. 2021년 12월 무한매수법을 따라하기 시작했고, 나스닥도 긴긴 하락을 시작했다.

그 뒤의 얘기는 길게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변동성을 먹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무한매수법은 -50%는 기본으로 양산하는 방법론이 됐고 사방천지에 곡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연히 그 방법론을 만든 분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분은 그분대로 타당성한 이유를 갖고 무한매수를 시작한 걸로 알고 있고, 일반적인 장에서 꽤 괜찮은 단타기법이라는 건 나도 여전히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이 유동성을 회수하는 장이라는 거고. 내가 알기로 그 방법론을 만든 분도 지금 장에 무지 고통 받는 걸로 알고 있다. 아마 그분은 계속할 거 같은데, 나는 시간도 그릇도 없어서 못하는 거고, 그분은 시간도 그릇도 되니 하는 거고. 그 차이일 게다.

지금 돌이켜볼 때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해 본다. 공부가 부족했을까, 장투 방법론 말고도 단기 방법론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했을까, 타이밍이 문제였을까, 무한정 물탈 생각을 말고 일찍 손절했어야 했을까, 중간에 익절구간이 왔을 때 털고 나와야 했을까.

어느 한 가지의 문제는 아니었을 거다.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 주식 투자자의 가장 큰 적인 변동성을 생각지 않는 우를 범했고, 지금 시장 상황이 어떤지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 1~2년 정도면 충분히 장기투자라고 생각했지만, 1~2년은 시장이 중간중간 짜장면 줄 때 먹고 빠지길 반복해야 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한 타이밍이란 걸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레버리지를 탔다는 점도 그렇고.

조금 전에 여자친구한테 어느 정도 얘기를 했다. 전말은 아니지만, 대강 꽤 많은 돈을 투자했고, 꽤 잃었다는 사실을 여자친구가 알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다소 다그쳤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상황을 인정했다.

안 좋은 것은 직접 부딪쳐서 배울 필요까진 없고, 머리로 알고 넘어가면 가장 좋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걸로 부족하다면 직접 부딪쳤을 때 배운 것이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부딪쳐 배운 것이 두고두고 나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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